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셔먼 파이어플라이 (문단 편집) == 실전 == 편제는 중형전차([[M4 셔먼]] or [[크롬웰 전차|크롬웰]]) 3대에 1대의 파이어플라이 or 챌린저[* [[A30 챌린저|챌린저]]는 크롬웰 부대에만 배치되었다고 하며,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는 배제되고, 항구건설 후 투입되었다.]였으며, 처칠 전차의 경우 파이어플라이가 아닌 [[M10 아킬레스]]와 같이 편제했다고 한다. 미군이 [[76mm M1 전차포]] 탑재 셔먼과 [[M36 잭슨]]이 [[노르망디 상륙작전]] 시행 전까지 상륙부대에 전달되지 못한 것과 반대로 파이어플라이는 계획한 모든 수량이 생산, 전달되어 적절한 순간에 사용될 수 있었는데 병기의 단점이니 성능이니 해도 필요한 순간에 곁에 있어 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퍼니전차]]를 필두로 한 상륙작전 준비도 영국이 더욱 철저했다.] [[피모철갑탄#s-2|저저항피모철갑탄]]으로도 약 1500미터 거리에서 [[6호 전차 티거|티거]]의 정면장갑을 관통할 수 있는 강력한 [[17파운더]] 선회 포탑을 올린 파이어플라이는 등장과 거의 동시에 [[서부전선]]에서 독일 전차병들이 가장 껄끄럽게 생각하는 연합군 전차가 되어 최우선 격파목표가 되었다. 문제는 파이어플라이의 방어력은 일반 셔먼 전차의 방어력에서 달라진 것이 없었다는 점이다. 독일 전차들은 긴 장포신 전차를 먼저 공격했기 때문에, 긴 포신을 숨기기 위해 위장망, 위장 도색, 가짜 머즐 브레이크, 다른 전차에 가짜포 달기 등 전차병들은 생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위장술을 총동원하여 이에 맞섰다. 독일의 [[6호 전차 티거|티거]] 에이스 [[미하엘 비트만]]을 전사시킨 것도 영국군 제1노샘프턴셔 요먼(1st Northamptonshire Yeomanry) 기병연대 A대대 3중대의 [[조 에킨스]]의 셔먼 VC라는 추측이 정설이다.[* 일부 역사가들은 래들리-월터스 소령의 파이어플라이가 잡았다는 가설도 제기하고 있다. 실제로도 조 에킨스설보다 현실적이고 피탄 위치도 더 정확하다. 조 에킨스는 약 1km에서 공격했으나 레들리 월터스는 500m에서 아예 매복까지 했기 때문. 후술할 명중률을 생각하면 레들리 월터스가 더욱 [[신빙성]]이 높다.] 비트만은 토털라이즈(Totalize) 작전을 저지하기 위해 기동하던 도중 파이어플라이의 [[매복]]에 걸려 우측방을 피격당했고 그 직후 차내의 포탄이 발화되어 [[유폭]]했다. 이 폭발로 비트만의 007호 티거는 포탑이 수 미터 바깥으로 튕겨나갈 정도의 처참한 피해를 입었고 비트만을 포함한 [[전차 승무원]] 전원이 즉사. 비트만의 죽음은 영국군 [[호커 타이푼]] [[전폭기]]의 로켓 공격에 의한 것이라는 설도 있지만 파괴된 사진[* 당시 프랑스인 농부가 찍어두고 홀로 간직하던 사진이 시간이 한참 지난 70년대에 공개되었다.]과 영국군의 작전계획서가 공개되면서 타이푼 공격설은 수십년 전에 이미 완벽한 낭설로 일축되었다. 자세한 사항은 위키피디아 [[http://en.wikipedia.org/wiki/Michael_Wittmann#Death|비트만의 죽음]] 항목을 참고. 또한 전선에 [[자유 폴란드군|자유 폴란드 기갑부대]]와 [[캐나다군]] 기갑부대도 있었기 때문에 이들에 의해 [[전사]]했다는 설도 있다. 17파운더의 위력은 [[5호 전차 판터|판터]]의 주포보다 더 관통력이 높다고 한다. 다만 어디까지나 파이어플라이는 보다 작고 약한 포를 쓰도록 만든 초기형 셔먼을 개조한 것이기 때문에[* 미군도 티거가 등장하기 전인 1942년에 이미 [[76mm M1 전차포]]를 같은 포탑에 장비하여 [[M4A1|M4A1 (T1)]]이라는 제식명으로 채용한 바 있지만, 자신들의 기준으로는 포탑 용적이 너무 비좁아서 전투 지속 능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소량 생산에 그쳤다. 하지만 당장 티거를 잡아야 살아남는 영국의 입장에서는 전투 지속 능력이니 하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였고 새로 대형 포탑을 생산할 여유도 적었으므로 기존 포탑에 장착하는 계획안이 강행되었다.] 위력이 강해진 만큼 늘어난 반동을 완전히 흡수하기 힘들었고, 이에 더불어 17파운더 특유의 무식한 [[장약]]량에서 비롯한 크고 아름다운 포구 섬광으로 탄착 [[오차]] 수정이 어려워 초탄에 상대방을 거꾸러트리지 못하면 역으로 당할 위험이 높았다. 17파운더는 [[분리철갑탄]]을 써야 제대로 된 관통력이 나오고, 분리철갑탄은 명중률이 시궁창이라 별 위협이 아니였다는 주장도 있지만, 17파운더는 분리철갑탄이 아닌 [[피모철갑탄]]을 사용할 경우의 명중률은 준수한 편이고 관통력도 1500야드 거리에서 130mm의 균질 압연 장갑을 관통이 가능하다는 점만 봐도 틀린 말이다. 이게 감이 안 잡힌다면 1500야드(=1300m)내에서는 [[6호 전차 티거|티거]]조차도 포탑과 포방패가 겹치는 부분(200mm)만 빼고 포탑과 차체 전 부분은 안전한 곳이 없다고 보면 된다. 애초에 파이어플라이가 명중률이 떨어지는 분리철갑탄 하나만 믿고 튀어나온 '핵주먹 가진 장님'이였다면 독일군 전차병들에게 위협적인 대상으로 취급되지도, 최우선 제거대상으로 지목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다만 명중률이 기존의 셔먼과 비교해서 많이 떨어지는 것 만큼은 사실이다. 독일군이 노획해서 실험한 결과 1000m 정지목표를 향해 발사한 포탄 10발 중 단 3,4발만이 목표에 명중했으며 그나마도 완전히 중앙에 맞은 경우는 단 1발이었다.[* 출처 Tank Firefly.] 알다시피 반동이 워낙 크고 발사할 때마다 주포와 조준장치에 워낙 무리가 가서 그렇기 때문. 게다가 안 그래도 궤도폭이 좁아 덩치와 무게에 비해 접지압이 높은 편이였던 셔먼이 17파운더의 장착으로 무게가 늘어나는 바람에 무려 56톤의 덩치를 자랑하는 티거를 접지압에서 이겨버린 것. 셔먼조차 좁은 궤도 때문에 무게에 비해 높은 접지압으로 야지 기동시 빌빌거리며 경우에 따라선 훨씬 무거운 [[5호 전차 판터|판터]]나 티거와 기동성이 비슷하다며 욕을 쳐먹던 판국이였으니...원판보다 무게가 더 늘어난 파이어플라이는 좁은 궤도덕에 고생한 셔먼보다 더한 개고생을 해야만 했다. 75mm와 3인치 포면 독일군 전차를 계속 문제없이 때려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던 미군의 경우 [[5호 전차 판터|판터]]와 [[6호 전차 티거|티거]]들이 예상보다 강력하게 등장하자 17파운더 포를 영국에서 지원받아 연구를 좀 해보긴 했으나, 떨어지는 명중율과 포구화염이 심하다는 등의 단점 때문에 사용하지 않았다. 애초에 셔먼에 76mm를 장착한 뒤 [[고속철갑탄]]을 사용할 경우 17파운더보다 약간 떨어지는 관통력 대신 17파운드보다는 상대적으로 좋은 명중률을 낼 수 있었다. 문제는 미리 대량 생산되어 실전에 투입된 17파운더와 달리 76mm용 고속철갑탄은 나중에 급히 생산하다보니 생산량이 너무 적어 실제 전장에서는 별로 유용하게 쓰이지 못했다는 것. 결국 미군은 75mm 포와 76mm 일반 철갑탄으로 계속 싸워야 했다. 정작 76mm를 보편화할 때 쯤엔 판터나 티거는 씨가 마르고 [[보병]]과 상대하는 전투가 훨씬 많았기 때문에 원래 야포인 75mm가 더 쓸모가 있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안하느니만 못하게 되었다. 생산된 파이어플라이들은 거의 모든 수량이 유럽 [[서부전선]]에 투입하였으며, 태평양 전선에는 사실상 배치되지 않았다. [[치하]] 등 [[일본군]]의 빈약한 전차들에게는 기존의 [[2파운더]]나 75mm 주포로도 충분하였기 때문. 일본군 상대로는 [[M3 리]]의 37mm 부포로도 무쌍을 찍을 수 있었다. 호주군이 영국으로부터 받은 비교적 단단한 [[마틸다 II]]나 [[밸런타인 전차|발렌타인]]으로도 일본군을 상대하기 충분했을 정도. 같은 이유로 17파운더 견인포나 17파운더를 [[M10 GMC]]에 탑재한 아킬레스 역시 태평양 전선에는 거의 없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